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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

  • 양촌면

    전라북도 전주군 양량소면의 지역이었는데 인내의 이름을 따라 인내 또는 인천(仁川)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월장리(越場里), 본장리(本場里), 동산리(東山里), 도정리(道井里), 하광리(下光里)의 각 일부와 연산군 모촌면의 남산리(南山里)일부를 병합하여 인천리라고 하고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행정구역은 인천1, 2, 3리로 되어 오다가 1992년도에 1개 행정리가 증편 4개 행정리로 되어 있으며 자연마을은 건너 장터(월장리), 도정골, 동산리, 은정자, 인내장터(본장리, 인내장)등이 있다.

    ※ 건 너 장 터 : 인내장터 동쪽 내 건너에 있는 장터마을이며, 월장리라고도 한다.
    ※ 도정골(道亭) : 동산리 남쪽에 있는 마을인데 옛날 이 마을에 살던 부호김씨가 지나가는 행인들이 쉬어 가도록 정자를 지어주어 행인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길옆에 정자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도정골 또는 도정리라고도 부른다 한다.
    ※ 동산리(東山里) : 동산 아래에 있는 큰 마을인데 동산 이름을 따서 동산리라 부르며 마을 뒤에는 높은 산이 있고 앞에는 넓은 들이 있어 경치가 좋은 마을이다.
    ※ 본장리(本場里) : 인내장 또는 인내장터라고도 하는데 대추가 많은 마을이다.
    ※ 은정자(銀亭子) : 도정리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 인천리

    전라북도 전주군 양량소면의 지역이었는데 인내의 이름을 따라 인내 또는 인천(仁川)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월장리(越場里), 본장리(本場里), 동산리(東山里), 도정리(道井里), 하광리(下光里)의 각 일부와 연산군 모촌면의 남산리(南山里)일부를 병합하여 인천리라고 하고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행정구역은 인천1, 2, 3리로 되어 오다가 1992년도에 1개 행정리가 증편 4개 행정리로 되어 있으며 자연마을은 건너 장터(월장리), 도정골, 동산리, 은정자, 인내장터(본장리, 인내장)등이 있다.

    ※ 건 너 장 터 : 인내장터 동쪽 내 건너에 있는 장터마을이며, 월장리라고도 한다.
    ※ 도정골(道亭) : 동산리 남쪽에 있는 마을인데 옛날 이 마을에 살던 부호김씨가 지나가는 행인들이 쉬어 가도록 정자를 지어주어 행인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길옆에 정자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도정골 또는 도정리라고도 부른다 한다.
    ※ 동산리(東山里) : 동산 아래에 있는 큰 마을인데 동산 이름을 따서 동산리라 부르며 마을 뒤에는 높은 산이 있고 앞에는 넓은 들이 있어 경치가 좋은 마을이다.
    ※ 본장리(本場里) : 인내장 또는 인내장터라고도 하는데 대추가 많은 마을이다.
    ※ 은정자(銀亭子) : 도정리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 도평리

    전라북도 고산군(高山郡) 운북면(雲北面)의 지역이었는데 높이 142m의 도리봉(道理峯)이 있으므로 도리들 또는 도평(道坪)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도상리(道上里), 도하리(道下里), 상리(上里), 중리(中里)와 은진군 가야곡면의 석서리(石西里) 일부를 합하여 도평리라 하고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행정구역은 도평1, 2, 3리로 되어 있으며, 자연마을은 건너말(건너골), 도리들(도평리), 돌서(도석), 새뜸, 아랫도리들(도상리, 하도평), 양지뜸, 윗도리들(상도평, 도하리)등이 있다.

    ※ 건너말 : 돌서 동남쪽 들 건너에 있는 마을이며 건너골이 라고도 한다.
    ※ 도리들 : 땅이 비옥한 마을로 길옆을 따라 들을 바라보고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도리들이라 부르며 도평리 를 말한다.
    ※ 돌 서 : 양촌면 석서리의 돌서앞 위쪽에 있는 마을로 이 마을은 돌이 많은 마을로 서쪽에 있는 마을 이라 하여 돌서 또는 도석, 상리라고도 한다.
    ※ 새 뜸 : 돌서 남동쪽에 마을인데 마을이 새로 생겼다하여 새뜸이라고 부른다 한다.
    ※ 양지뜸 : 양지쪽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라 하여 양지뜸이 라고 한다.

  • 임화리

    전라북도 고산군(高山郡) 운북면(雲北面)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교리(新郊里), 백촌리(栢村里), 계동리(桂洞里), 무수동(無愁洞), 상고리(上高里), 하고리(下高里), 구만리(九萬里)와 은진군 가야곡면의 석서리(石西里), 양촌리(陽村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임화리라 하고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행정구역은 임화1, 2, 3, 4리로 되어 있으며, 자연마을은 계동, 노가티(봉황리), 무수리, 벌말(평촌), 빈골(빈곡), 빼재, 상고(상고리, 고산임화), 새터(신교리), 잣정이(백촌리)등이 있으며 3열녀가 배출된 열녀의 고장이기도 하다.

    ※ 계 동(桂洞) : 무수리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 고 산 임 화 : 옛날 전라도 고산땅이었다 하여 고산 임화라 부르며 임화리 위쪽에 있는 마을로 상고라고도 부른다.
    ※ 노 가 티 : 잣정이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노씨가 살았다 하여 노가티라 부른다 하며, 또 봉황산이 있다 하여 봉황리라고도 부른다.
    ※ 무 수 리 : 잣정이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이 마을은 풍수리지 학상 선인무수형(仙人舞袖型)의 명당이 있다 하여 무수리(舞袖里)라 부른다 한다.
    ※ 백촌리(栢村里) : 인내 서남쪽 양촌면 석서리 새말로 가는 중간에 있는 마을인데 잣정이라고도 한다.
    ※ 빈 곡(賓谷) : 상고리 북동쪽 골짜기에 있는 빈골이라고도 부른다.
    ※ 새 터 : 잣정이 북쪽 들가에 새로된 마을로 신기 또는 신교 리라고도 한다.

  • 양촌리

    전라북도 전주군 양량소면(陽良所面)의 지역이었는데 마을이 내(川) 양쪽으로 갈라져 있어 양촌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리(新里), 임하리(林下里)의 각 일부와 전북 고산군 운북면(雲北面)의 하고리(下高里) 일부를 병합하여 양촌리라 하고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행정구역은 양촌1, 2리로 되어 있으며 자연마을은 벌뜸(평촌), 이문안(이문내), 탑안이(탑신내리), 원양촌 등이 있다.

    ※ 벌 뜸 : 양촌 북동쪽 벌판에 있는 마을로 벌판에 있는 뜸이 라 하여 벌뜸이라 부른다고 한다.
    ※ 양촌(陽村) : 마을이 내(川)양쪽에 갈라져 있다하여 양촌이 라 부른다 한다.
    ※ 이 문 안 : 양촌 북쪽에 있는 마을로 통일신라시대 원양촌에 서 경주이씨들이 이주하여 살면서 마을전체를 돌 담으로 울타리를 치고 문(門)을 두 개 세웠는데 그 이문(里門)이 있었던 마을이라 하여 이문안 또는 이 문내라고도 부른다.
    ※ 탑 안 이 : 벌뜸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이 마을 앞에 탑(塔)이 있었다 하여 탑안이 또는 탑내신리 라고도 한다.

  • 신기리

    전라북도 전주군 양량소면(陽良所面)의 지역으로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해서 새말, 새터, 신기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사리(上沙里), 하사리(下沙里), 고암리(高岩里)를 병합하여 신기리라 하고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행정구역은 신기1, 2리고 되어 있으며, 자연마을은 괸돌(고암리), 늘마(만헌), 사기소, 아래사기소, 위사기소(상사리), 청룡(청룡안)등이 있다.

    ※ 괸 돌 : 새터 남쪽에 있는 마을로 이 마을이 괸돌(고인돌) 무덤이 있으며, 지석, 고암리라고도 한다.
    ※ 늘 마 루 : 괸돌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이 펀펀한 곳에 자리했다 하여 늘마루 또는 만헌이라고도 부른다.
    ※ 사 기 소 : 용두산 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인데 옛날 이 마을에는 사기를 만드는 사기소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 청룡(靑龍) : 아래사기소 서쪽에 있는 마을인데 청룡안이라 고도 한다.

  • 오산리

    전라북도 전주군 양량소면(陽良所面)의 지역이었는데 사방이 높은 산이 둘러있는 가운데 낮은 곳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오미 또는 오산(鰲山)이라 하였다. 그후 유명한 학자 이명봉(李鳴鳳)이 여기에 살면서 자기의 호(號) 오산(梧山)이라 부르게 하였다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양촌면에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은 오산1, 2리로 되어 있으며, 자연마을은 위오미(으뜸, 상오산상리), 중리, 와촌 등이 있다.

    ※ 위오미 : 오미 위쪽에 있는 마을로 주위가 큰 산으로 가려 져 있고 그 가운데 낮은 곳에 마을이 있어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동산의 위에 있다하여 위오미 또는 웃 뜸, 상오산상리라 부른다.
    ※ 상 리 : 이조 초엽 상리라는 기와공이 오산리에 와서 기와굽 는 기술을 배워갔다 하여 그 일본인 이름을 따라 상리라 하였다고 한다.
    ※와 촌 : 고려초엽 와촌이란 도적두목이 이곳에 주둔하면서 악질적인 부자들의 물건만 훔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의적이었는데 정부군이 소탕작전을 3년동안 벌렸지만 패배하고 돌아 가자 도적들은 자진 해산하였고, 와촌이란 두목은 이곳에 눌러 앉아 농사를 짓고 살았다하여 와촌이라고 부른다 한다.
    ※ 중 리 : 오미 중간에 있는 마을이다.

  • 채광리

    전라북도 전주군 양량소면(陽良所面)의 지역이었는데 상광리(上光里), 하광리(下光里), 채동(彩洞), 오산리(梧山里) 일부를 병합하여 광달(光達) 과 채동(彩洞)의 이름을 따서 채광리라 하고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인천천의 자연발생 유원지인 밤나무골에는 하절기 피서객들이 인산 인해를 이루고 있다. 행정구역은 채광1, 2리로 되어 있으며 자연마을은 기와막(일룡평), 광달리, 상광리, 새터(하광리), 수락리, 용암리, 채동(채화동) 등이 있다. (1) 자연마을과 지명유래 - 광달(光達) : 채광리에서 으뜸가는 마을로 광달리라고도 하는데, 옛날 한 지관이 이곳 산세를 둘러보고 대둔산 정상에 내리는 햇빛이 반사되 냇물이 윤기있게 흐르는 것을 보고 햇빛이 반사되는 곳 에 묘를 쓰고 집안이 번창했다고 한다. 빛이 다다른 곳에 명당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광달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기 와 막 : 용암리 북동쪽에 있는 마을인데 옛날 기와점이 있었다하며 일룡평이라고도 한다.
    - 기 와 점 터 : 옛날 이곳에 기와점이 있었다하며 그 기와점의 터이다.
    - 밤 나 무 골 : 논산천상류로 밤나무가 많이 있는 골짜기로 여름철 피서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 상광리(上光里) : 광달리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 새 터 : 광달리 아래 새로된 마을로 하광리라고도 한다. 옛날 중국의 한지관이 명당 자리를 찾기 이곳에 와서 땅에 새알을 묻으니 금방 부화되어 새가되어 날아가자 이곳이 명당임을 알고 있었는데 다른 농부가 묘를 쓰자 그 농부는 번창해 갔고 그지관은 묘를 쓰지 못한 것을 한탄 하다가 죽었다 하는데 이곳은 새가 날아간 명당자리라 하여 새터라고 부른다 한다.
    - 수락리(水落里) : 높이 169m되는 수락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 수락산(水落山) : 새터 북쪽에 있는 마을인데 높이가 169m이다.
    - 용 바 우[바위] : 새터 북쪽에 있는 바위인데 모양이 마치 용처럼 생겼다고 하여 용바위 또는 용암이라고도 부른다.
    - 용암(龍岩)[바위] : 용바우라고도 하며 새터 북쪽에 있다.
    - 용암리(龍岩里) : 용바우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 일룡평(日龍坪) : 기와막이라고도 하는데 용암리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 채 동(彩洞) : 용암리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채화동이라고도 부른다. 옛날 유씨부부가 이마을에 살았는데금실은 좋았으나 슬하에 자식이 없는 것이 한이되어 1년365일을 불공을 드리며 치성을 드리니 꿈속에 한선인이 나타나서 용암산 할미바위 밑에 산나물을 뜯어다 다려 먹으라 하여 그리하니 옥동자를 얻게되 었다그후 이마을은 채동(彩童)이라 불렀는데 변하여 채동 (彩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채화동(彩花洞) : 채동이라고도 하며 용암리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 하광리(下光里) : 새터라고도 하는데 광달리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 할매바위[바위] : 새터에 있는 바위인데 옛날 할머니 한분이 손자들의 출세를 위해 돌을 주어다가 탑을쌓았다 는 애절한 전설이 깃들여 있는 바위이다.

  • 남산리

    연산군의 모촌면 지역이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침동리, 가사동과 전라북도 전주군 양량소면의 도정리, 제비리를 병합하여 남산리라하여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되었다. 남산리의 뒤편에 있는 목단봉(牧丹峯)은 산이 수려하기로 유명하고 산이 남쪽으로 향하고 있어 햇빛이 따뜻하고 기름진 고을이라하여 남산리라 하였다고 한다. 행정구역은 남산1, 2리로 되어 있으며, 자연부락은 가재골, 갓점말, 당골, 무수정 등이 있다.

    ※ 가재골 : 침동 북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이 골짜기에 있고 가재가 많은 마을이라하여 가재골 또는 개절, 가사동 이라고도 한다.
    ※ 갓점말 : 당골 동쪽에 있는 마을인데 옛날 삿갓을 만드는 집이 있었다하여 갓점말 또는 입촌이라고도 한다.
    ※ 당 골 : 남산 서북쪽에 있는 마을인데 옛날 이 마을에는 호랑이가 많이 나타났는데 이 마을에 힘센 진씨라는 장사가 있어 호랑이 한두마리 잡는 것은 식은 죽 먹듯하였다. 이때 개절에 도사 한사람이 여기를 맑은 물이 흐르는 신선지라 하여 담곡이라 하여 지명을 담곡이라 불러왔고 그 후 호랑이도 나타나지 않아 이것은 부처님의 영험탓이라하여 당골 즉 불당이 있는 고을이라고 고쳐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무수정 : 당골 남쪽에 있는 마을인데 느티나무가 많이 있는 마을이라하여 무수정이라 부른다한다.

  • 반암리

    전라북도 전주군 양량소면(陽良所面)의 지역이었는데 마을에 반바우가 있어서반바우 또는 반암(半岩데)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물한리(勿汗里), 제비리(諸非理), 도정리(道井里)의 각 일부와 연산군 모촌면(茅村面)의 남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반암리라 하고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행정구역은 반암1, 2리로 되어 있으며 자연마을은 물한이, 샘골, 제비울, 욧골, 반바우 등이 있다

    ※ 가재골 : 침동 북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이 골짜기에 있고 가재가 많은 마을이라하여 가재골 또는 개절, 가사동 이라고도 한다.
    ※ 갓점말 : 당골 동쪽에 있는 마을인데 옛날 삿갓을 만드는 집이 있었다하여 갓점말 또는 입촌이라고도 한다.
    ※ 당 골 : 남산 서북쪽에 있는 마을인데 옛날 이 마을에는 호랑이가 많이 나타났는데 이 마을에 힘센 진씨라는 장사가 있어 호랑이 한두마리 잡는 것은 식은 죽 먹듯하였다. 이때 개절에 도사 한사람이 여기를 맑은 물이 흐르는 신선지라 하여 담곡이라 하여 지명을 담곡이라 불러왔고 그 후 호랑이도 나타나지 않아 이것은 부처님의 영험탓이라하여 당골 즉 불당이 있는 고을이라고 고쳐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무수정 : 당골 남쪽에 있는 마을인데 느티나무가 많이 있는 마을이라하여 무수정이라 부른다한다.

  • 산직리

    연산군 모촌면(茅村面)의 지역이었는데 옛날 이 마을에 산직집이 있어서 산직말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웅티리, 장동(壯洞)을 병합하여 산직리하 하고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행정구역은 산직1, 2리로 되어 있으며 자연마을은 골막, 뒷목, 녹산, 승지골, 장골, 성안뜸, 신정리 등이 있다.

    ※ 골 막 : 산직말 남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처음에 골짜기에 움막을 짓고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하여 골목 또는 곡막이라고 부르며 상우티라고도 부른다.
    ※ 녹 산 : 산직말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는 버드나무가 푸르렀던 마을이라 하여 녹산이라부른다.
    ※ 뒷 목 : 장골뒤 북동쪽에 있는 마을인데 곰티재 아래에 있다. 옛날 여기엔 수백년된 떡갈나무가 있었는데 나라가 어지러울 때가 되면 소리를 내어 미리 알려주어 덕을 주는 나무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덕목이 라 하였는데 변하여 뒷목이 되었다고 한다.
    ※ 성안뜸 : 옛날 삼국시대때 백제에서 성을 쌓고 적과 싸웠다는데 그 성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성안뜸이라 부른다 한다.
    ※ 승적곡 : 승적골이라고도 하며 산직말 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 승지골 : 벼슬을 많이 하는 집이 있었다하여 승지골이라 부른다 한다.
    ※ 장 골 : 산직말 옆에 있는 마을로 장동이라고도 하는데 옛날이 마을에 장사가 살았다고 한다.

  • 모촌리

    연산군 모촌리(茅村里)의 소재지로서 28개리를 관할하였는데 마을에 띠가 많이 있어서 띠울 또는 모촌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고리곡리(古里谷理), 웅천리(熊川里), 신계리(新溪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모촌리라하고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행정구역은 모촌1, 2, 3리로 되어 있으며, 자연마을은 곰내, 띠울, 미낭골, 원실보, 하마촌 등이 있다.

    ※ 곰 내 : 띠울 북서쪽에 있는 마을인데 곰내가에 있으며 웅천이라고도 부른다.
    ※ 띠 울 : 모촌리를 말하며 마을에 띠가 많아 띠울이라 하였다고 한다.
    ※ 미낭골 : 모촌리에서 가장 큰 마을인데 고리실에 있으며 원앙동이라고도 한다.
    ※ 원실보 : 띠울 남쪽에 있는 작은 마을인데 옛날에는 이 마을에 원집이 있었고, 지금은 큰 보(洑)가 있다하여 원수보 또는 월실, 원실보라고도 부른다.
    ※ 하마촌 : 띠울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하마비가 있었다고 한다.

  • 신흥리

    연산군 모촌리(茅村里)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계리(新溪里), 죽내리(竹內里), 웅천리(熊川里)의 각 일부와 은진군 갈마면(葛麻面)의 방현리(防峴里) 일부를 병합하여 새로 일어나라는 뜻으로 신흥리라 하고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행정구역은 신흥1, 2리로 되어 있으며, 자연마을은 배암재, 새뜸, 소금번지, 안뜸 등이 있다.

    ※ 배 암 재 : 배암산 밑에 있고 소금번지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 새 뜸 : 소금번지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1935년에 새로 생긴 마을이다.
    ※ 소금번지 : 경경시장이 한창일 때 대전 금산지방의 소금장수들이 하룻밤을 묵어가는 장소라하여 소금번지라 부르며, 신흥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벌판에 위치하고 있다.
    ※ 안 뜸 : 새뜸 북쪽 큰길 안쪽에 있는 마을이다.

  • 거사리

    연산군 모촌리(茅村里)의 지역으로 모래벌판을 개척한 지역인데 선비들이 많이 살았으므로 거사(居士)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방축리(防築里), 신평리(新坪里), 송정리(松亭里), 차곡리(磋谷里), 갈전리(葛田里), 죽내리(竹內里),신흥리(新興里)의 각 일부와 적사곡면(赤寺谷面)의 동상리(東床里) 일부를 병합하여 가사리(居士里)라 하고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행정구역은 가사1, 2리로 되어 오다가 1992년 1개 행정리가 증편 1, 2, 3리로 되어 있으며 자연마을은 가라티, 거사, 새펄, 장자동, 죽아니, 차곡 등이 있다.

    ※ 가라티 : 장자터 동쪽에 있는 마을인데 옛날에는 말대밭이어서 뜸부기들이 많이 서식했다고 한다. 갈밭이 있었다하여 가라티 또는 갈앗티, 갈전리라고도 한다.
    ※ 새 펄 : 거사 서쪽 들에 새로된 마을로 신평이라고도 한다.
    ※ 장자터 : 신평옆 동쪽에 있는 마을인데 옛날에 큰부자인 장자가 살았다하여 장자동 또는 장자터라 부른다.
    ※ 죽아니 : 거사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에는 대나무가 울창하여 대밭을 이루고 있었는데 대밭 안쪽에 위치 한 마을이라 하여 죽내리 또는 죽안이라 하였는데 변하여 죽아니라 부른다 한다.
    ※ 차 곡 : 가라티 동쪽에 있는 마을로 거사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조선시대에 이 마을에는 김씨라는 큰 부자 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수레를 타고 한양을 왕래하곤 하였다하여 차곡이라 부른다.

  • 반곡리

    연산군 모촌면(茅村面)의 지역이었는데 지형이 마치 소반과 같이 생겼다하여 반곡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당리(書堂里), 원북리(院北里), 갈전리(葛田里), 하명암리(下鳴暗里), 거사리(居士里)의 각 일부와 적사곡면(赤寺谷面)의 동상리(東床里) 일부와 내적면(內赤面)의 고정리(高井里) 일부를 병합하여 반곡리라 하고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행정구역은 반곡1, 2리로 되어있으며, 자연마을은 난민촌, 동상골, 반곡, 서당골, 서점리, 원디등이 있다.

    (1) 자연마을과 지명유래

    ※ 난민촌(難民村) : 봉동이라고도 하는데 반곡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 동 상 골 : 반곡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동상리라고도 한다. 뒷산이 그리 높지않고 앞이 평풍처럼 펼쳐 져 있어서 마을에 질병이 들어오지 않으며 꼬한 피난처로도 알려져 있는 마을인데 이마을에 들어오면 동상(東床)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하여 동상골이라 부른다 한다.
    ※ 동상리(東床里) : 동상골이라고도 하며 반곡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 반 곡(盤谷) : 반곡리를 말하며 지형이 마치 소반과 같이 생겼다하여 반곡이라 부른다.
    ※ 반곡서당터(盤谷書堂) : 반골리 서당골에 옛서당터가 있다. 조선 숙종때 김씨라는 사람이 서당을 세우고 후진 들을 교육시키던 서당의 터라 한다.
    ※ 봉 동(鳳洞) : 반곡 동북쪽에 있는 마을인데 난민촌이라고도 부르며 1950년 6.25당시의 피난민들이 살아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 서당곡(書唐谷) : 서당골이라고도 하며 국사봉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 서 당 골 : 국사봉 서쪽에 있는 마을로 서당곡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숙종때 김씨가 서당을 세우고 후진을 가르켰던 마을이라 한다.
    ※ 서림곡(西林谷) : 옛날엔 숲이 우거져 머루와 다래, 으름이 많은 골짜기로 덩상골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산 과일을 따먹었다 하는데 서쪽 숲에 있던 골짜기라 하여 서림곡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서림리(西林里) : 반곡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 원 디 : 동상골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원북리라고도 한다. 옛날 나그네들이 길을 가다가 자고 가도 록 저어놓은 집을 원집이라 하는데 여기에 그 원집이 있었던 자리라 한다.
    ※ 원북리(院北里) : 원디라고도 하며 동상골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 휴정서원터(休亭書院) : 동상골 앞에 있는 휴정서원의 터로 1700 (숙종26년)에 서원을 세우고 1868년 (고종5 년)에 서원훼철령에 의하여 철폐된 서원의 터이다.

  • 명암리

    (1) 자연마을과 지명유래

    ※ 도 리 미 : 울바우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도림리, 하명암이라고도 하며 도리미라는 작은산이 있다.
    ※ 도 리 미[산] : 도림리에 있는 외딴산
    ※ 도림리(道林里) : 도리미라고도 하며 울바우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다.
    ※ 매 봉 : 울바우 북쪽에 있는 산인데 산의 형세가 마치 매와같이 영특하게 생겼다하여 매봉 또는 응봉이라고도 부른다.
    ※ 명 암 : 명암리를 말한다.
    ※ 빗 가 리 : 울바우를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 왕 대(旺垈) : 왕대골이라고도 하는데 울바우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 울 바 우 : 울바우 서쪽에 있는 마을로 왕대, 왕대리라고도 하며 여기엔 왕이 태어날 터가 있다 하여 왕대골이라 하였다 한다.
    ※ 왕대리(旺垈里) : 왕대골 이라고도 하며 울바우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 울 바 우 : 명암리를 말하며 울바우가 있다.
    ※ 통 미 : 도리미산을 말하며 도림리에 있다.
    ※ 하 명 암 : 도리미라고도 하며 울바우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다.

  • 석서리

    은진군 갈마면(葛痲面)의 지역으로 석천(石川)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석서(石西)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하석리(下石里), 신촌리(莘村里), 고촌리(高村里), 오령리(梧嶺里) 일부를 병합하여 석서리라하고 논산군 가야곡면에 편입 하였다가 1971년 7월 1일 양촌면에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은 석서1, 2리로 되어 있으며, 자연마을은 고촌, 새말, 하석등이 있다.

    (1) 자연마을과 지명유래

    ※ 고 촌(高村) : 석촌 위쪽 높은지대에 있는 마을인데 산위에 마을이 있다하여 고촌이라 부르며 상석이리 라고도 한다.
    ※김정망효자정려 : 석서리 17번지에 김정망 효자정려가 있다. 조선 현종때 내린 정료로 도평리에 있던 것을 후에 현위치에 옮겼다.
    ※ 도 리 내 : 돌내라고도 한다.
    ※ 돌 내 : 도리내 또는 석천이라고도 하는데 중산리 피재에서 발원하여 양촌리와 석서리를 거쳐 인천천(仁川川)으로 들어가는 내이다.
    ※ 상 석(上石) : 고천이라고도 하며 석촌위쪽 높은지대에 있는 마을이다.
    ※ 새 말 : 고촌 동쪽 옆에 새로된 마을인데 신촌이라고도 한다.
    ※ 석 천(石川) : 돌내라고도 한다.
    ※ 신 촌(莘村) : 새말이라고도 하는데 고촌 동쪽 옆에 새로된 마을이다.
    ※ 하 석(下石) : 석서리에서 가장큰 마을인데 하석리라고도 하며 석천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다.
    ※ 하석리(下石里) : 하석이라고도 하며 석서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 중산리

    은진군 상두면(上豆面)의 지역으로 중산(中山) 밑에 있다하여 중산, 중재 또는 중티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우항리(牛項里), 동구리(洞口里)일부를 병합하여 중산리라하고 논산군 가야곡면에 편입하였다가 1983년 2월 15일 가야곡면 양촌리 일부(노촌, 동구리마을)와 함께 양촌면 중산리로 편입되었으며 고려때의 사찰인 쌍계사가 있다. 행정구역은 중산1, 2, 3리로 되어 있으며 자연마을은 사라니, 쇠묵, 절골, 동구리, 노촌등이 있다.

    (1) 자연마을과 지명유래

    ※ 갈 내 : 노촌이라고도 하며 동구리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 강병흠, 평택임씨정려 : 중산리 산99번지에 있다. 효자 강병흠은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시묘살이 하면서 옷 자락에 돌을 담고 다니며 고행을 하여 포석효자(砲石孝子)라고도 하였으며, 그의 부인 평택임씨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자결 남편의 뒤를 따랐다.
    ※ 까 치 재 : 우항리에서 전북 완주군 화산면 까치말로 넘어가는 높은 고개로 옛날에는 도적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하며 6.25때는 공비들이 은거하였다고 한다.
    ※ 노 천 : 노촌이라고도 하며 동구리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 노 촌(盧村) : 동구리 북쪽에 있는 마을인데 300여년전에 백씨들이 갈대밭을 개척하여 마을을 이룩했다 하여 노촌이라 부른다 하며 냇물이 흘러 갈내 또는 노천이라고도 부른다. 본래 가야곡면 양촌리에 속하였는데 1938년 2월 15일 가야곡 중산리가 양촌면으로 편입될 때 중산리에 편입 양촌면 중산리에 속하게 되었다.
    ※ 피 재 : 우항리에서 전북 완주군 운주면 승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승티라고도 한다.
    ※ 동구리(洞口里) : 노촌 남쪽에 있는 마을로 쌍계사로 들어가는 동구가 되므로 동구리라 하였다. 가야곡면 양촌리에 속하였는데 1983년 2월 15일 가야곡면 중산리가 양촌면으로 편입할 때 노촌마을 과 함께 중산리에 딸리어 양촌면 중산리에 편입되었다.
    ※ 백암사(白岩寺) : 지금의 쌍계사를 옛날에 백암사라고 하였다.
    ※ 사 곡(寺谷) : 절골이라고도 하는데 중산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 사 라 니 : 중산 남서쪽에 있는 마을인데 중산의 안쪽이 되므로 산안이라 부르다가 변하여 사라니 또는 산내리라고도 부른다.
    ※ 산내리(山內里) : 사라니라고도 하며 중산 남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 산 안 : 사리니라고도 하며 중산의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산안이라 부른다.
    ※ 쇠 묵 : 사라니 남동쪽에 있는 마을인데 마을의 뒷산 형태가 마치 소의 목 같이 생겼다하여 쇠묵 또는 우항리라고도 부른다.
    ※ 승 티 : 피재라고도 하는데 우항리에서 운주면 승티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 우 항(牛項) : 쇠묵이라고도 하는데 사라니 남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 우항리(牛項里) : 쇠묵 또는 우항이라고도 한다.
    ※ 작 티 : 까치재라고도 하는데 우항리에서 운주면 승티리로 넘어가는 고개
    ※ 절 골 : 중산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쌍계사입구에 있다. 현재는 30여호 밖에 없으나 쌍계사의 전성 기 고려때에는 여기를 찾아드는 신도들이 자리잡고 살아 큰 마을이었다고 한다. 절이 있는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절골 또는 사곡이라 부른다고 한다.
    ※ 중 산(中山) : 중산리를 말한다.
    ※ 중 재 : 중산리를 중재라고도 한다.
    ※ 중 티 : 중산리를 중티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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