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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장생 문묘배향교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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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시는 길

소개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시계 김장생(1548∼1631) 선생을 문묘에 제사지내도록 숙종 43년(1717)에 내린 교지이다. 김장생은 조선시대 학자로 선조 11년(1578)에 학행으로 천거되어 6품직에 오르고 정산현감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호조정랑으로 명나라 군사의 군량조달에 공을 세웠고, 선조 35년(1602) 청백리에 천거되었으며 형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교육에 전념하였다. 문하에 송시열, 송준길 등 서인을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를 형성하였다. 한지에 세로로 내려 쓴 이 교지는 총 624자 48줄로 수록되어 있으며, 내용은 김장생의 학문과 사상이 국가사회에 기여하였고 특히 예학의 대가로서 인간생활의 도덕성 확립에 이바지한 공이 크므로 문묘에 모시도록 한다는 것이다. 조선 숙종 43년(1717)에 사계(沙溪)김장생을 문묘에 배향토록 내린교지이며, 한지에 종서(從書)로 내려쓴 이 교지(敎旨)는 가로 6.3m, 세로 88㎝로 총 624자가 종서 48줄로 수록되어 있으며, 사계선생의 학문과 사상이 국가사회에 기여하였고 특히 예학(禮學)의 대가로서 인간생활의 도덕성 확립에 이바지한 공이 크므로 문묘에 배향(配享)토록 임금이 명을 내렸다는 내용이다. 김장생은 조선시대 문신·학자로 1578년에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6품직에 오르고 창릉참봉(昌陵參奉)을 거쳐 정산현감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 났을 때 호조 정랑(正郞)으로 명군의 군량조달에 공을 세웠고, 1602년에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으며 후에 형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다시 사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교육에 전념하였다. 문하에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俊吉)등 서인을 중신으로한 기호학파(畿湖學派)를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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